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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는 순간에 떠올리는 Non, je ne regrette rien(나는 후회하지 않아)_영화 파니핑크 삽입곡

F.coco 2023. 3. 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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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니핑크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여자가 서른 넘어 결혼할 확률은
원자 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아요

1994년에 나온 이 영화를 2010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처음 봤을 때는 영화를 보는 동안 한참을 참 기괴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뭐? 저런 대사는 어디서 근거한거야? 맙소사- 하기도 했습니다.
시한부이며 동성애자이자 사기꾼에 가까운 흑인 점성술사 오르페오. 그리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있지만 스물 아홉에 남자가 없어서 지독히 외로운,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이 직접 짠 관을 집안에 두고 그 안에 들어가 자는 파니. 파니는 오르페오의 얼렁뚱땅 타로점 -23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남자가 마지막 기회다-을 그대로 믿고, 마침 나타난 차량번호 2323인 건물주가 운명이라 생각하며, 그와 어떻게든 엮여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죠. 물론 영화의 끝에는, 죽은-아니 진짜 혹성에서 데려간건지도 모르는-오르페오의 타로점처럼, 23이라고 쓰여진 추리닝을 입은 남자가 파니 앞에 운명처럼 나타났고,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자신이 직접 짠 관을 건물 위에서 시원하게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모든 로맨스 드라마와 영화를 사랑하는 제가 그로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이 영화를 마음에 담게 된 것은, 끝내 운명같은 사랑을 만난 파니 때문이 아닙니다.
 
파니가 좋아하는 해골 분장을 하고, 초를 가득 꽂은 서른살 생일 케이크를 들고, 기운 없이 어두운 아파트에 들어온 파니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노래를 불러주는 오르페오, 그 때 오르페오의 입에서 흐르는 곡 - Non, je ne regrette rien
그 순간 한꺼번에 터져버리던 감정들- 울컥하는 감동, 따뜻함과 뭉클함, 그리고 눈물. 오르페오라는 친구가 있는 파니에 대한 부러움까지. 

영화 파니핑크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살면서 틈틈히, 더 정확히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밀려들 때면 저는 이 장면이 떠오르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는, 노래 제목과는 아주 반대로,
'후회할 일이 있는 순간', 또는 '후회하고 있는 내 자신이 초라한 순간'에 이 노래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빰~빰, 빰~빰, 빰~빰, 빰~빰, 하는 전주만으로도 벅찬 감정이 올라오기 충분한 곡이지만,
저는 늪으로 하염없이 빠지고 있는 제 감정을 어떻게든 추스르면서, 한편으로는 입술 꾹 다물고 다짐하면서,
꾸역꾸역, 그래, 후회하지 말자, 할 때가 더 많았거든요.
 
그러다 팬텀싱어 광팬 of the 광팬인 저는 얼마 전 팬텀싱어4를 보다가 이 노래를 부르는 지원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부르는 Non, je ne regrette rien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차고 긍정적이었어요. 정말 나는 이제 후회같은 거 하지 않는다, 하는 좋은 기운이 느껴졌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곡의 마지막 가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어요.
 

Car Ma Vie, Car Me Joies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왜냐하면 나의 삶과 즐거움은
바로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되니까요


 
 
아..........!!! 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 갑자기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슬쩍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T를 쳐다보았어요.
 
(음, 근데 뭐하니.. 이런 감동적인 순간에는 나를 좀 바라봐주면 안되겠니?!)
(.......볼 때까지 보고 있으니--- 보네요ㅎㅎ) 
(씨이익~ 같이 웃어줍니다.)
 
후회할 일 투성이, 늪에서 허우적거릴 일 투성이인 저이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다 없었던 일처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만
T를 만난 후부터는 최소한 예전처럼
끝도 모를 후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T는 이런 감성 충만 F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니 모릅니다.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까 들어보라고 했더니, 어 이거 너무 유명한 곡이지-하고 듣다 마네요. 끙..
 
자기 전, 반드시 이 감정을 좀 제대로 느껴봐 줄 수는 없겠니?! 하며
꼭 듣고 자라고 해봐야겠습니다. 
 

T : 음, 나는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게 더 마음에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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