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oco/F.talk 13

슈테판 슬루페츠키 『양 한마리 양 두마리』중에서

사랑에 빠진 양 한마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폴트. 그가 사랑한 또 한 마리의 양은 군디였다. 레오폴트가 군디를 처음 만난 곳은,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양을 세고 있던 아홉 살 소년의 머릿속이었다. 소년이 헤아리던 양들 속에 군디가 섞여 있었고, 그 바로 뒤에 레오폴트가 있었다. 레오폴트는 첫눈에 군디에게 반해버렸다. 군디 바로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털이 복실한 하얀 엉덩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생각했다. "정말 예쁜데! 저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봐! 틀림없이 예쁜 자식들을 낳겠는걸!" 레오폴트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소년이 눈을 감고 양이 울타리를 넘는 광경을 떠올리던,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가 나직하게 '열셋(이 열세번째가 바로 군디였다)' '열넷(그리고..

F.coco/F.talk 2023.03.04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중에서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 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재미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 깨닫게 된 어른은 그것을 혹은 그것마저 잃어버릴까봐 문득문득 두려워 하게 되는걸. 삶은 그제서야 한 사람에게 제 무게를 온전히 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F.coco/F.talk 2023.03.01